품안의 자식을 품 밖으로 내놓으며
한달전에 막내이자 외동딸인 예지가 대학에 진학하느라 집을 떠났다.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인 현진이를 4년전에 대학에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만감이 교차 했었는데 이젠 둘다 집을 떠나 달랑 남편과 나, 단둘의 오붓한 새 삶이 시작 되었다.
첫애때는 애나 부모에게 뭐든 첫 경험이라 어리버리 얼떨결에 넘어갔는데 둘째 때는 그래도 경험이 있는지라 애나 부모나 조금은 더 능숙해지고, 일에 닥치기 전에 미리 생각 하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현진이는 같은 주( In state)에 있는 학교로 진학 하여, 다행이 주일마다 교회에서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를 학교 기숙사에 두고 돌아설때는 물론, 집에 와서 텅빈 그의 방을 둘러보면서 마음이 뭉클 해지고
목이 메이며 눈물이 나와 아들 방 근처를 아에 가지 못했다.
난 나만 이랬는지 알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남편 역시 한달동안은 아들 방 문을 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처럼 군대에 간것도 아니고, 사고 치고 잘못되서 어디 감옥 간건 더 더욱 아니고, 공부 열심히 잘 해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좋은 대학에 갔음에도 출가 했다는 사실 하나로만 이러니 참 부모의 마음이란…..
어쨋든 두번째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이번 예지의 대학 진학은 내게 퍽 애뜻한 느낌으로 미리 다가 왔다. 12학년 졸업하는 5월 말까지 IB CLASS 시험보느라 바빴지만 5월 27일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월 20일에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전까지 두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 왔다.그래서 가능한한 가족끼리 특별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미리부터 애썼다. 큰애 때는 앞이 뻔한 일도 왜 그리 미리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냥 그냥 있다가 불쑥, 어느날 갑자기 애를 떠나 보낸 것 같아 참 많이 허전 했다.
그래서 이번엔 작정을 하고 추억 만들기를 하였다.우리 네 식구끼리만 여름 휴가도 오붓이 가고, 매주 온가족이 함께 볼링을 했다. 아들과 엄마, 딸과 아빠가 한편이 되어 게임비 내기로 재밌지만 격렬하게 게임하고,( 결국 게임비는 승패에 상관 없이 남편이 매번 냈다)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맥도날에 둘러 아이스크림도 꼬박 꼬박 먹고. (나나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별로 즐겨하지 않고 남편은 좋아하나 당뇨땜에 못 먹지만 딸이 맥도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여 순전이 추억 만들기로 볼링후에 꼭 들리는 코스가 되었다. ) 예지 예쁜 옷 사주느라 쇼핑도 자주 함께 하고, 딸 떠나기 전에 작년부터 살까 말까 벼르던 식기들을 과감이 장만하여 예쁜 그릇에 밥을 담아 식탁의 격조도 높여 보고…. 그동안 입시 준비로 통 못 가졌던 Family movie night도 다시 함께 했다.
나름대로 준비하며 이별하기전의 시간을 소중이 보낸다고 보냈으나 딸을 놓고 돌아 오는 마음은 준비 없이 당한 아들때와 매한가지로 뭉클하면서 아쉬움 투성이었다.
그동안 잘 성장하여 이제는부모의 품안에서 나와 자신들의 힘으로 인생을 시작하려는 아들과 딸이 참 고맙고 대견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쉬운 맘이 드는건 왜 일까?
품안의 자식일때는 언제 커서 사람구실 할까? 했었는데 막상 사람 구실 하려고 부모 품을 벗어나는 때가 오니 나의 품안이 텅 비어지는 느낌이다. 앞으로 몇년은 공부하고 일하느라 정신이 없겠지? 그러다 또 적당한 때면 손주, 손녀들로 나의 품이 다시 꽉 채워지리라.
그래! 그때까지 너희들은 너희들대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자신을 위해 살자! 그동안 이십여년 식구들을 우선으로 열심히 살아 왔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나를 우선으로 살아보자! 홧팅!!!!
저희는 아직 10학년이랍니다.
저는 잔정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 대학 보내 놓고 별 감정이 없었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36일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보내었지요.
800키로가 넘는 길을 혼자 걸어서 다녀온 아이이기에 별 걱정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여행 기간에 우리 부부가 할 걱정을 모두 다 해 버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