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일상들

동생을 보내며

꿈 꾸는 자 2011. 11. 13. 10:28

오늘 동생이 떠났다.

한달이 조금 안 되는 일정이 참으로 짧게 느껴졌다.

여동생이라 그동안 저녁 설겆이는 자원으로 맡아 해 주었고,

나랑 함께 가게로 나와 바쁜 점심 시간에 손님들을  테이블로 안내 해 주고,

마감할때 옆에서 계산도 도와주고 ,테이블도 알아서 척척 치워 주어

나는 물론 우리 웨이츠레스들도 작별을 무척 아쉬워 했다.

 

한살차이 밖에 안되어 서로 치고 받고, 언니랄 것도 없이 자랄 수도 있었지만

착한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꼭 나를 언니로  취급해 주었다.

여동생은 성격이 조용해서 사람 만나 밖으로 다니는것도 별로 안 좋아하여

언니를  친구로 삼아 지낼거라며 많은 친구도 필요 없다고 했었다.

근데 무심한 이 언니는 일찍이 사랑에 눈이 멀어 대학 졸업하고 일년뒤

뒤도 안돌아 보고  먼 미국으로 시집가 버렸다.

 

지금이야 Facebook은 물론  IT 강국인 한국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 채팅은 물론 사진 전송도 즉시 할 수 있고, 얼굴을 보며 화상 채팅까지 할 수 있지만

내가 고국을 떠난  이십이년전  미국은 완전 바다 건너 머나먼 외국이었다. 

전화요금은 1분에 $3.95 씩이나 되어 시계를 봐가며 살 떨리는 국제 통회를 하였고,

스마트폰은 커녕 일반  P C 도 구경하기 힘들었었다.

고국에 있는 친정 식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수단은  편지였다.

조금  정성을 기울여 부지런 떤다면 카메라로 사진 찍어, 가게에 맡겨 현상한 후

편지에 넣어 보내는 정도가 다였다.

게다가 난 낯선 외국 생활에 적응하랴, 갓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시댁 어른께 적응하랴

요즘 말로  Survival Game 에 정신이 없었다.

 

이제 동생이나 나나 애들이 왠만큼 커서 이렇게 호젓이 만나지

여지껏은 말로만 의좋은 자매이지  막상 서로 만나는건  4 - 5 년에 한번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여동생이 십이삼년전에 한번 미국에 오고 주로 내가 한국으로 나가서 봤으니

애들도 어려서 정신이 없고,여동생은  일 해야하니  

낮 동안은 내 볼일 보고 저녁에만 짬짬이 친정과 여동생 집을 오가며 만나서

우리끼리의 호젓한 시간을 갖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선 동생이 혼자 왔고, 나 역시 내 애들 둘 다 학교 기숙사에 있어

둘이서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우리 가게에도 함께 나가  정말 오랫만에  호젓이 함게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하더라도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언니 만나러 오는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음에도

가게부에 굵은 주름이 확 잡힘에도 큰 결단을 하고  와준 동생이 참 고맙다.

어제 저녁 마지막 밤을 보내며 함께 자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었는지

동생과 함께 잔다는 생각만 해도, 내일이면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혼자서 벌써 눈시울이 뜨거워져

결국은 그냥 각자 자고 말아 좀 미안 했다.

동생은 내가 한국 가면  그렇게 말려도 제부 혼자 두고

자기 딸들이랑 몽땅 거실에서 함께 자곤 했는데....

젊은 동생아!

한해 한해 타향 살이에 이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는 한살이나 많은 이언니를 이해해다오!

 

 

앞으로는 매년 만나자고 다짐하며 헤어져 전처럼 기약 없는 안타까운 이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생이 떠난 이 밤은  이 초겨울 날씨에 딱 어울리는 쓸쓸한 밤이다.

그동안은 일분 일초를 소중히 하며 함께 지내느라 정리할 시간을 못 냈는데  

이제 며칠은 그동안 동생과 함게한 시간들을 이쁘게 정리해 봐야겠다.

 

 

 

 

 

 

 

 

 

 

 

 

 

맞아요 독일 유학시절 누군가 떠난다는 것은 썩 좋은 마음이 아니라는 걸 그때 공항에서 아는 교수님이 네 맘 안다 이럴때 쓰는 말 "제기랄"언제나 이별 후는 후회만 남고....유학시절 같이 사는 언니가 떠날때 학교 수업이고 뭐고 다 결강하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물려 동생인데, 가슴 언절이가 아플거예요 ㅏ들 고국을 등지고 뭐그리 잘살려고 이렇게 사는지 ㅎㅎㅎㅎㅎㅎ 결혼하고 한구 떠나 올때는 더 많이 울었던 ,아니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우린 괴테의 미뇽 주인공 처럼 죽는날까지 고국을 그리며 살다가 죽을거예요 ㅎㅎㅎㅎ 힘네요 그래도 지금은 예쁜 아들 딸이 함께 하잖아요 "제기랄' 한번 해보세요 맘이 좀 나아질거예요 ㅎㅎㅎㅎ 좋은 하루되세요 감사가 넘치는 하루두요^^
들어온 자리는 티가 않나도 나간 자리는 티 난다는 옛말이 딱 맞죠!
그래도 곧 또 만난다는 기대로 다른 때보다는 훨씬 괞찬아요.
그래도 .....하긴하지만!
방문 감사 합니다.
지난번 전화 통화 때
심 목사님이 우리 사는 모습을 굉장히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자주 놀러 오세요!
저도 예은이 보낼때 몇일동안 울었는데..
이모는 울지마세요!
눈시울은 뜨거워졌지만
아직 울음은 않 나왔다.
외국 생활하는 같은 맏이로써
지예가 이모 맘을 제일 잘 알겠구나!
걱정해 줘서 고마와.

근데 지예는 좋겠네 곧 한국 갈테니..
한 살 아래 여동생이면 그야말로 가장 친한 친구지요.
저는 여 동생이 둘이 있는데 저도 외국에 떠나와 살다보니 자주 못 만나서 아쉽네요.
다들 직장에 매인 몸이 되다보니 이곳으로 여행 오는 것도 쉽지 않고 아이들이 대학이나 들어가면 수월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저나 여동생이나 양쪽 다 애들이 컸으니까
지금이야 서로 만날 여유가 생기지
애들 어릴때는 육아도 그렇고 항공료도 3인분이 벅차고....
맘뿐이지 오고가기가 쉽지 않았죠!
나이가 드니 이런 홀가분한 여유도 생기네요.
정말 애틋한 시간을 보내셨네요
아무래도 가족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제일 마음을 많이 쓸쓸하게 하지요?
에구! 어쩌나~~ 우리 꿈꾸는 자님
한동안 마음 한켠이 쓸쓸할텐데....
이사만 안가셨어도 제가 들러 보았을텐데....

정말 예전엔 그리운 식구들에게
글로쓴 편지와 찍은 사진을 보내는것이
최선의 일이었었는데
요즘엔 많이 좋아졌지요?

자매가 있다는건 정말 행운이에요
부럽다...
제가 좀 늦게 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