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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의 유감! 궁색한 딸의 변명!

꿈 꾸는 자 2014. 5. 17. 15:50
친정 엄마의 유감!
 
친정 엄마는 자신의 짧은 학력이 못내 아쉬워 딸은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야겠다고 했고,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자신의 지난날이 못내 아쉬워 자신의 딸은 부족함 없이 귀하게 키웠다.
 
어렸을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딸을 보며  그 엄마는 딸이 대학교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고,
공부도 외모도 남에게 견줘 굳이 빠지지 않는 딸을 보며 자신의 보석이라며 자랑스러워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자랑스러운 딸은 대학을 졸업하구 취직할 틈도 없이 연애하더니 결혼을 하여 멀리 떠났다.
많은 기대를 한 탓에 엄마는 딸의 출가가 대견하기보다는 허탈함이 많았다.
 
자신보다 훨씬 잘나게 키웠는데 변변한 사회인으로써  전문성도 갖추지 못하고 
평범한 애들 엄마 ,주부로써 살아가는 딸을 보며 아쉬움이 많다.
 
특히 주변에 요즘 여자들이 탄탄한 직장을 갖고 전문인으로써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비교가 된다.
내 딸이 분명 저 여자들 보다 못 한게 없는데 어찌 내 딸은 저렇게 급하게 결혼을 했을까?
저리 평범하게 가정 주부로 살아갈꺼면 그냥 고등학교만 보냈어도 됐을텐데 
왜 굳이 대학까지 보내느라 그리 애를 썼는지 의문까지 생긴다.
 
그래도 딸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며 아쉬운 마음을 쓸어 내린다.
 
 
 
 
 
 
딸의 궁색한 변명
 
딸은 어렸을때부터  대부분의 주변 친구들보다  자신을 돋보이게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엄마에게 감사함은 많지만  
막상 엄마에게 살갑고 다정함은 느껴 보지 못하였다.
 
비록 자식에게 늘 잘 입히고 잘 먹이시며 최선을 다 하시긴 하지만 
친구들과 웃고 즐기는 시간을 가지시는 걸 무척이나 즐겨 하시는 엄마를 보며 섭섭하기도 했지만 
형제 없이 자라신 엄마가 외로움이 많으시구나 하며 이해하려 했고,
막상 자식들과는  오손 도손 아기자기하게 얘기할 줄 모르시는 걸 보며 
엄마의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 하지는 않았겠다 싶었다.
 
대부분의 부모님 세대들이 어려운 시절을 보내셔서 그렇듯이 
엄마는 딸에게 둘째 아들에게 시집가야 
별다른  의무 없이 편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입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지금은  결혼을 하여 살아보니 다 이해가 되고, 굳이 문제라고도 할 것도 없지만 
한참 사춘기인 그때에는 되풀이 되는 엄마의  이런 당부가 너무 속세적인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고,
잠시였지만 한동안 감지한  엄마 아빠의 냉랭한 기운에 
나만은 어떻하든지 기필코 뜨겁고 진지한 사랑을  해야겠다는 강한 갈망이 생겼다.  
 
그러다 그이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고, 
이 사람과라면 보란듯이 결혼후에도 식지 않을 사랑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게다가 나의 부모님에게도 아들처럼 살갑게 잘 할 거라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하였다.
 
부모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불같은 사랑을 한 그녀는 이민이란게 뭔지 실감을 제대로 못하고 
마치 해외에 파견 근무 나왔다가 기한이 지나면 다시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는걸로 착각하고 
그냥 바다 건너로 날아갔다.
 
첫 몇년은 새 나라에 정착하고 내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 없이 시간이 흘러 갔지만 
어느날부턴가 비로소 부모 형제를 떠난 이민 생활의 실체를 깨닫게 되면서 
많은 죄스러움이 밀려 들고 울적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늘 그 모습 그대로 건강하고 젊게 계셔 주실줄 알았던 부모님이 
점차 연로해져가는 모습을  보니 점점 더 심정이 착찹해진다.
 
현재 여기서 살고 있는  내 삶에 대해서는 별루 불만이 없지만 
보고 싶을때, 특히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때에도 
엄마와 밥 한끼 제대로 함께 할 수 없음에  깊은 좌절이 되곤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단 이유로 
그동안은 내 자식보다도 부모님 챙기기에 더 열심이었지만 
이제 한해 한해 달라져가시는 엄마에겐 딸과의 고마운 지난 기억보다는 
현재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아쉬움과 원망이 더 크게 자라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언젠가부터 전화를 하게되면 자주 되풀이 되는 
엄마의 십팔번이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딸의 서글픔과 안타까움은 더 커진다.
 
그렇게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무서웠던 엄마는 어디 가시고, 
이젠 몸과 마음이 많이 연로하고 약해지셔서 
보호해 드리고 , 소소한 것까지 옆에서 챙겨 드려야 할 노인네가 되셨을까!
 
어제도 기분 좋게 시작한 전화 통화가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스스로의 서글픔에 복받쳐버리신 엄마로인해 우울하게 끝났다.
 
 "그러길래 왜 결혼을 허락했어! 
나 같으면 끝까지 반대 했을 꺼야! 
다 엄마 탓이고, 이게 엄마와 나의 운명이지 뭐!"
딸은 말도 안되는 궁색한 변명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너도 나중에 닥쳐봐라.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이기냐!"
라는 엄마의 이 강펀치에는 더 이상의 변명이 불가능 하였다....
 
  
 
 
 
 
 
 
꿈자님의 그 넋두리 아닌 넋두리가 바로 요즘 제가 느끼는 것이랍니다.
아직 어렸을 때는 세상을 다 집어삼키듯 그렇게 나만 존재했는데
이제 내 가정이 생기니 세상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게다가 너무 멀리 계신 부모님의 일상은 더욱 생각하며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꿈자님......
그렇죠?
전에 비해서 이제는 모든게 발전하여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거랑은 확연히 다르죠!

애들은 이땅에서 커가고, 부모님은 저 먼 땅에서 나이들어 가시고....
이쪽을 포기 할 수도 저쪽에 전념 할수도 없는게 이민 1세의 딜레마인것 같아요!
멀리 떨어져 애키우며 정신없이 살다보면 한번씩 그럴때가 있더라구.
특히 어버이날 이나 어르신들 생신날이면 함께 하지 못하기에
더 미안하고 그러면서 또 우울해지고.
그래도 넌 정말 열심히 잘 살았어.
아이들도 잘 키우고.
어머님도 자랑스러워 하심에 분명한데 옆에서 못보기에 아쉽고 서운한거지.
난 이제야 좀 받아들여지고 적응이 되나봐.
너무 오랫동안 힘들어 했거든.
좀 일찍 아예 헝가리에 뿌리를 내렸어야 했는데......
항상 떠날 준비를 마음 한켠 하고 살아서 손해 본 시간들이 많아.
안녕? 선미야.
신연이란다, 반갑다. 졸업 후에 한번도 못 봤지.
윤지영 만나면 네 소식 전해 듣곤 했어^^*
네 두 딸 하은이, 하빈이... 예쁘다, 너도 행복해 보이고.
난 홈피도 블러그도 페북도 ...없으.
카톡도 못X안 해.
내가 자주 놀러 갈게~~
선미야!
내가 네 블방에 귀한 손님 한분 모셨다.
이렇게 친구들과 블방에서 만나는 재미도 썩 괜찮네!

넌 언제든 때가 되면 한국으로 돌아갈수 있는 여건이 되나 보지?
난 처음부터 이민으로 시작했고,
여기서는 나름 만족하게 살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여력은 되지 않으니
역이민은 신혼 초에나 꿈꾸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 낯선 땅에서 어떻하든 생존할려고 많이 애 쓰긴 했어.

그동안 나름대로한다도 했지만 이렇게 부모님이 연로 하시니까
곁에 함께 있어드리지 못하는게 너무 죄송스럽고 맘 아프다!

넌 애들 대학 가면 돌아간다고 하니 좋겠다~~~
아...
지영아!
왜 내가 눈물이 나지?
한편으론 부러운게 뭔지 아니?
이처럼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지하는 너의 그 능력이란다.
친정엄마의 입장, 너의 입장 모두 다 이해가 될 것 같아.
오히려 난 그런 네가 부럽고...장하다^^*

넌 불같이 뜨거운 사랑 중이었던것 같아.
대학 4학년 때쯤으로 기억되는 네 모습은....
신연이야.
아이디가 변해 버렸으! 방명록에는 다르게.... [비밀댓글]
맞아.
나 대학때 불 같은 사랑을 했었지.
곧 미국 가야 하는 오빠는 영약하게 그당시 내 친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 주시기에 힘썼지,ㅋㅋ
그때나 이때나 친정 부모님의 심정은 다 이해해.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인데 자꾸 멀리 시집간 날
평생 외할머니 곁에 사시며 보살펴 드린 당신과 비교하여 말씀하시니
듣는 나는 답답하고 그렇지....

너도 그 멀리에 살면서 답답한게 많을꺼야.
같은 해외파 동창끼리 동병상련의 맘을 나눠보자! ^^

이렇게 내 블러그에 댓글을 남겨주어 반갑고 또 고맙다 신연아!
친정어머님과 꿈자님 자신의 상념을 각각 객관적 시선으로 분석해 보셨군요.^
친정 어머님의 유감도, 꿈자님의 궁색한 변명도 하하, 왠지 이해가 갈 듯 합니다.
아마 그 세대쯤에선 대체로 비슷하게 갖는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사실 고등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오직 좋은 직장을 갖기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간에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고 활용되는 것이 배움과 지식이고,
꿈자님께서 지금 이 시점에 오시기까지 그 지식이 알게 모르게 분명 큰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전업주부일 경우라도 전업주부를 homemaker 라 하는데는 그 이유가 있쟎아요 글쵸.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딨냐구요 정말,
열렬한 사랑에 빠지면 루비컨보다 더한 것인들 못 건너겠어요. 하하.
뒤늦게 시간이 흐르고 철이 든 후에야 아... 부모님이 정말 외로우셨겠구나.. 하는거지요.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일 수 밖에 없는가 봅니다.

그나저나 어머니 날은 잘 보내셨는죠 꿈자님.
꿈자님 부모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분위기를 보니 요즘 오래전 벗들과 연락이 돼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는 듯 하네요.
반갑고 기쁘시겠어요~^
섭섭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전부터 친정 엄마의 마음은 헤아려지더라구요.
저라도 똑 같은 마음일테니까요.
단지 아쉬운건 이왕 엎지러진 물인데 자꾸 아쉬워만 하시니 가끔씩은 저도 힘들죠.

내 애들이 어렸을땐 제 부모님과 비교해보면 제가 너무 엉터리 엄마 같아서,
또 부모님을 너무 멀리 떠나온게 죄송해서 전 어버이날에 카네이숀 않 달아요.
이래저래 자격미달인것 같아서요.

근 이십육년에 대학 동창들과 연결이돼 반가운 얼굴들과 하루하루 흥분하며 연락하며 지냅니다.
심난해져가기 쉬운 중년의 삶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고마운 활력소랍니다.

꿈자님 ~하이~~~~
올만에 뵈어요.
부모님 생각만 하며는 맘이 쨘 하여요~~~
는송이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랫만이죠.
제가 그동안 너무 게을렀었서요....

그곳 엘에이는 이런저런 모임이나 유익한 단체가 많아서
이제 슬슬 시간 나는 중년들에게는 참 좋은 것 같아요!
꿈자는 마음이 더 짠하겠다
멀리 가있어서 자주 부모님을 만나지 못해서 더 그런 마음이 들을 거라 생각해
난 시엄마 돌아가시고 이제 친정가는게 더 수월해졌는데
엄마도 더 자주오시고 더 편하신가봐
바쁠때 오시라고 하기도 편하고 그래
돌아가시기전에 자주 얼굴보는게 효도라고 생각해
남편씨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이제부터는 친정 엄마한테 더 잘 해드려.
더도 말고 시어머니한테 한거 반만!
보통 우리여자들은 결혼해서 시댁에 충성 봉사 하느라
친정 부모님은 본의 아니게 항상 2순위시잖아.
친정 가까운 사람이 제일루 부럽네~~
엄마를 그리워 하는 맘이 절절 하네요.
정은 준마큼 느낀다는게 맞는 말 같습니다.
나이가 드니 그러나 봐요.
멀리 있으면 그리움이 절절한데 막상 전화 통화를 하다보면 답답함과 서움함이 커지니 이를 어쩐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