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35

블러그를 통해 건너온 선물 보따리

미국으로 이민와 산지가 벌써 24년이 되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처음 온 1989년도만 해도 국제 전화 요금이 1분에 $1씩이나 되게 비쌌고,컴퓨터는 구경도 못 해 봤으니 당연히 이멜이라는 것도 없었고 페이스북이나 카톡이라는 것도 존재 하지 않았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하는 방법은 그 비싼 국제 전화를 하던지 손 편지를 손수 쓰던지 양자 택일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미국 와서 처음 몇년동안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편지도 하고 가끔씩 전화도 하고, 어저다 한국에 나가면 고등학교 동창이나 대학 동창들도 만나기도 하곤 했었다. 그러다 어쩌다 한번씩 나가는 귀한 한국 나들이에 부모 형제랑 보내는 시간도 아쉽고 눈치가 보여 힌국에 나가도 친구들에게 연락을 못하게 되고,또 각자 애들 키우느라 바뻐 편..

수고 했어요 남편! 정말 고마와 ^^

작은 가게를 하며 미국에서 사는 이민자로써 한국을 여행하기란 쉽지가 않다. 신혼때는 미국 와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애들이 생기니 애들 학교땜에 제일 비싼 성수기에만 나가야 하느라 아들, 딸 그리고 나, 세식구 한국행 항공료며 체재비가 큰 부담었고, 그 애들이 조금 커 중고등학생이 되니 공부가 부담이 되어 몇년을 한국에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간간이 몇년에 한번씩 남편은 홀로 미국에 남아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벌고,나랑 애들만 몇번 고국을 다녀 왔다. 이제 애들도 다 커 애들 걱정 없이 나혼자서 단출하게 다녀 올 수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가게에서의 나의 역활이 알게 모르게 커져 나의 빈자리가 휭하니 표가 나나보다. 애들과 함께 다녀 올때도 그랬고, 삼년전 나혼자 다녀 올때만 해도 우리 남편은 ..

내가 뀐 방귀, 그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 한다구?

이번 고국 나들이는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다. 오랫만에 친정 식구들을 보는거야 말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고, 게다가 생면부지의 블러그 친구들과의 만남 도 이루어졌으니 참으로 뜻 깊은 여행이었다. 그동안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블러그라는걸 시작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on line에서 만났다. 내가 그리 뛰어난 실력가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 내 블러그에 그리 많은 방문객은 없지만 몇몇 분들과는 고정적으로 교류하며 소통을 하고 있다. 처음 블러그를 시작 할때 다른이의 블방에 놀러 가면 서로들 만나기도 하고,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사니 서로 만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선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은 나에게 일어날 확률이 거의 "0..